[1장] 사고의 차원에 대한 접근법은 모든 사물에 대해, 또는 모든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고, 그것을 자신의 아집에 빠져 주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항상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실 눈에 보이는 그 존재 자체는 데카르트가 언급했던 것처럼 단지 감각을 통해서 받아들여진 것일 뿐, 실체가 아닐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이러한 존재 자체를 뛰어넘어 그 존재 자체를 바라보는 눈(렌즈), 또 더 나아가 그 눈을 가진 사람들이 속한 사회적, 문화적인 환경에 대해 접근함으로써, 그 실체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고의 차원을 높여가며 가치를 인식하는 사고 방식은 사람마다 제 각각으로 해석되는 그런 차원(낮은 차원)에서 해석되는 것 보다 훨씬 통일성 있고, 보다 납득 할만한 가치의 본질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열쇠와 같은 거라 생각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고의 차원과 더불어 비록 차원적인 한계가 뒤따르기는 하지만, 모델을 통해 다양한 변수와 그 변수들 간의 관계를 형성하여 가치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방법론에 대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고의 차원과 모델을 윤리학에 적용한 것은 윤리학을 이해하기 쉽고, 보다 체계적으로 해석을 가능하게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윤리학을 사고의 차원에 따라 규범 윤리학, 메타 윤리학, 문화적 상대주의로 분류하고, 그 다음, 각각의 윤리학들을 모델 변수와 관계를 통해서 해석하였는데, 사고의 차원과 모델을 통한 해석이 그들의 관계를 정확히 표현하고, 관계를 설명하였습니다.
특히 규범 윤리학은 각 윤리학 간의 아무런 연관성 없이 각각의 윤리학 자체를 단지 이해하고만 있는 정도였는데. 각각의 윤리학을 모델 변수(행위와 규칙, 목적, 동기, 결과, 상황, 성품)를 통하여 설명하고, 이들의 관계(시간의 전후관꼐, 구체화/추상화, 상황/사람)를 통해 해석함으로써,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윤리학 뿐만 아니라, 이러한 다차원 사고/모델 방법(MSC 방법)은 다른 많은 학문에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2장] 성서 윤리를 해석하는 방법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성서 자체가 다양한 사람(렌즈)들에 의해 쓰여졌고, 또한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해석되어지므로, 접근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책에는 첫 번째로 이러한 성서에 대해 통시적/공시적 접근법을 통해, 통시적 방법이 갖는 장단점과 공시적 접근법이 갖는 장단점을 제시하고, 이를 모두 통합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입체적으로 성서를 조망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사실 그러한 대안이 너무 추상적이고, 그 결론에 대한 한계점만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다음에 이어지는 성서 해석의 다양한 접근법(사고의 3차원 접근, 신앙사건/증언을 통한 접근)을 통해서 좀 더 구체적인 대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신앙 사건과 증언을 통한 접근법을 통해서 우리가 성서를 접할 때, 이분화된 사고를 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신앙 사건을 통해서 만이 진정한 신앙의 의식화 생활화 작업이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신앙 사건을 겪지 않고도 하나님에 대해 이성적으로 논하고, 윤리적으로 올바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는 진정한 신앙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 이분화되어 있는 눈으로 사건을 바라보기 전에 성서를 바라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도 언급되어 있듯이, 신앙사건의 존재영역과 우리가 바라보는 영역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신앙사건을 우리가 바라보는 그 존재 자체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생각 차원의 단계를 높여서 사고하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진정한 가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서구 신학이 그러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이분화된 인식구조를 통해서 신앙사건을 신학과 윤리, 어떻게 보면 본질이 많은 다른 두개의 학문으로 분리하고 발전시켰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보면 신앙 사건과는 단절된 채, 서로 어떠한 교류도 없이 각각 독자적으로 해석된 단편적인 가치를 해석하게 된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면 성서 윤리를 접근 하는 다른 방법으로 수업 시간에 배운 모델 구축 방법 중에서 새로운 변수를 찾고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도 유용할 것 같습니다. 제3의 변수를 두어 관계를 새롭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성서를 해석할 때, 성서를 쓴 사람, 해석하는 사람만의 관계를 두지 말고, 그 사이의 중재자(새로운 변수)를 두는 것입니다. 중재자는 성서를 쓰는 사람이 전하고 싶은 말, 해석하려는 사람이 이해하는 내용을 모두 받아 들여서 그것을 종합하고, 관계를 맺어주는 것입니다.
[3장] 자연과학과 윤리학을 접목시킨 것은 가장 참신하고도 새로운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다루는 대상도 다르고, 학문의 구조적 성격도 매우 달라 어떠한 연관성도 없어 보이지만, 그러한 관계를 새롭게 유추하고, 관계를 맺음으로써, 윤리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뉴턴(그리고 데카르트, 흄),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물리학에 대한 이론의 변화를 윤리학에 접목시킨 점은 윤리학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1)절대 정지와 윤리학의 절대적 기준에 대한 확립, (2)뉴턴의 상대성 이론을 통해 모든 가치는 상대적이며, 모든 가치는 다 옳을 수 있다는 결론과 윤리적 행위자로의 관심의 초점 전환 유도, 마지막으로 (3)아인슈타인의 빛을 제외한 모든 절대 공간, 절대 시간을 부정한 것을 통해서 윤리학에 시공간이란 새로운 장을 도입하고, 윤리적 행위를 그 시공간의 관계와 함께 해석하고, 절대적인 기준(하나님)을 도출해 낸 것은 새로운 해석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물리학과 윤리학을 접목시켜 해석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본 저서를 읽으면서 분명 물리학과 윤리학에도 어느 정도 납득하고 이해할 만한 공통점이 있었고, 또한, 서로 연관 지어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는 아마도 단지 존재 자체만을 바라보는 1차원적인 사고로는 어려울 것이며, 그 이상을 뛰어넘는 생각의 생각, 아니면 생각의 생각의 생각을 통해서 만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많은 학문들이 1차원적인 관점에서 보면 모두 제각각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사고의 차원을 높여가다 보면 결국은 모든 학문에도 궁극적인 공통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러한 해석을 통해서 각 학문간에 좀 더 긴밀한 관계를 갖고, 서로에 대한 접근을 시도한다면 더 새롭고, 우리가 생각치 못한 새로운 결론(이득이 되는 결론, 새로운 변수와 관계를 도출하게 되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4장]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그들이 무엇을 선호하고, 무엇을 위해 사는지를 통해 윤리적 가치에 접근해 봄으로써, 단지 이론적 내용만을 설명하여 접근하는 것에 반해 좀 더 삶에 가까운 윤리적 가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인과 자연인의 윤리적 가치 구조와 또 그 흐름도에 대해서 논하는 부분에서는 실제적으로 느끼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가짐)과 자신의 지위(됨)만을 얻기 위해 여유를 갖기 못하고, 인생의 끝 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보는데, 저 또한 그러한 사람들 중에 하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사실 저는 가짐의 가치와 됨의 가치를 얻기 위해 사는 삶이 나쁘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책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나눔과 섬김의 삶이 더 높은 단계의 삶이라는 것은 저 또한 같은 생각입니다. 만약 자신이 가치와 됨을 얻었다면 그 것을 남들에게 나누어 주고, 또 자신의 지위를 너무 내세우지 않고,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항상 부족한 것이 신앙 사건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한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스스로 베풀고, 섬기고, 즉 윤리적인 삶(신앙적인 삶)을 산다 하더라도 그것은 무의미하며,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삶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진정한 삶, 궁극적인 신앙인의 삶을 위해서는 반드시 신앙사건을 통해,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를 맺고, 남에게 베풀고, 또 남을 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때야 비로소 우리가 추구하는 진정한 가치를 실현하게 되는 것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