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상황과 이용악 시인



1. 1930년대 후반 리얼리즘과 이용악

1930년대 후반은 프로시인들의 정신적 버팀목 역할을 했던 카프의 해산, 그리고 이어서 불어닥친 일제 파시즘의 전면적인 등장이라는 문학 외적 상황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시인들은 내면화 또는 내성화의 길을 걷게 된다. 이 때 내면화 또는 내성화라는 의미는 정치적인 구호의 차원으로까지 전개되었던 프로시의 경향성이 더 이상 불가능한 상태에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처한 민족 현실과 거기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함을 말한다.

이런 대표적인 시인으로 이용악(李庸岳:1914 ~ 1971?)을 들 수 있다. 이용악은 시작(詩作)의 초기에 작가 자신의 체험이나 가족사, 나아가서는 고향의 이야기를 시의 제재로 삼으면서, 이와 비슷한 경향을 보이는 백석과도 구별되는 나름의 투박하면서도 굵은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 그의 시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이야기를 향토적 정서를 보장하는 함경도의 사투리를 통하여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습작기의 시작은 주관적인 목소리가 범람하기 쉽다.

그런데 이용악 시의 제재가 냉정한 시각을 유지하기 어려운 자신의 가족사였음을 감안한다면, 그가 표현하고 있는 객관화된 현실은 높이 평가될 만하다. 이런 초기시의 경향은 고향을 떠나 침상도 없는 이국 땅에서 객사한 아버지의 죽음을 노래한 [풀벌레소리 가득 차 있었다]에 잘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용악은 이런 시적 형상을 통하여 일제 강점의 상황에서 유랑민이 될 수밖에 없었던 민족 현실을 정당하게 반영하는 민족 문학의 한 전형을 보여주었다.

이용악의 시세계는 일제 강점의 상황에서 억압받고, 유이민화되어 가는 민족의 이야기와 이런 객관화된 이야기가 제시하는 정서라고 할 수 있다. 시의 리얼리즘을 논의하는 데에서 종래에 강조되었던 시의 이야기적 요소나 서술적인 구조의 강점 외에도, 객관화된 현실이 주는 비애의 정서도 시의 리얼리즘을 확보하는 데에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 1930년대 한국시와 이용악의 고향 의식

* 1930년대 한국시의 고향 의식 : 백석(白石)(1912~1963?)의 공동체적 삶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고향 사람들의 해학적인 묘사이다. 고향 어디서나 만날 것 같은 친근한 인상의 인물들을 해학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시골의 건강한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누구나 흉터 하나쯤은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건강하게 보이는 것은 고향이라는 곳이 치유의 장(場)도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서는 이웃의 아픔을 감싸안는 너그러움과 화해로운 삶이 있어서, 개인적인 상처가 상처로 보이지 않는다. 하나같이 못생기고 투박해 보이는 인물묘사에서도 즐거움이 느껴지는 것은 그들의 건강한 삶의 방식으로 말미암는다. 질곡의 시절에 가족을 위하는 삶의 모습이 건강하고, 이것은 백석이 그리는 고향의 삶의 모습이다. 이러한 고향이 건강하게 보이는 것은 지금의 삶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그립게 다가온다. 백석의 고향은 이미 궤멸된 곳이어서 다시 떠날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여기서 시인이 느끼는 의식은 상실의식과 유랑의식이다.

* 이용악 시에서의 고향의 의미 : 이용악 시인의 시는 고향에서의 삶에 골몰할수록 현재와는 불화를 드러내고 있음을 나타낸다. 현재와의 갈등이란 외압으로 인한 것이었음을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시인은 1930년대의 일제의 수탈에 의해 황폐해진 고향을 시적 공간으로 설정해 고향의 피폐함을 드러내고 있다. 고향은 어린 딸을 팔아야 할 정도로 파탄에 이른 공간이기도 하다. 그곳은 인간이 더 이상 인간으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하는 폐허의 이미지로 남는다. 여기서 느끼는 시인의 고향의식은 떠남의 장이어야 하는데도 끝없이 돌아가는 꿈을 꾸는 곳으로 설정되었다. 결국 돌아가지만 더욱 황폐해진 고향에 안주하지 못하고 다시 이향(離鄕)을 꿈꾸는 의식을 갖게 된다.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떠날 수밖에 없는 재이향(再離鄕)의 공간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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